호사유피 인사유명(산업은행 뉴욕지점장 김인주) KOCHAM March 20, 2012

호사유피 인사유명(산업은행 뉴욕지점장 김인주)

호사유피 인사유명

김인주/부회장·한국산업은행 뉴욕지점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 오대사의 기록에 왕언장이라는 장수가 즐겨 말하던 구절이 표사유피 인사유명(豹死留皮 人死留名)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이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표범에서 호랑이로 바뀌었다고 한다. 표범이던 호랑이던 전하려는 것은 사람이 명예롭게 되려면 역사에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미국 의회에서 발의되는 법률명칭에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것은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금융분야만 보아도 은행업과 증권업을 엄격히 분리시킨 1933년 글라스 스티갈법이 그렇고, 반대로 은행업과 증권업의 벽을 허물어낸 1999년 그램 리치 블라일리법이 그렇다.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를 겪고 난 후 제안되어, 금융시장의 이슈가 되고 있는 법안 중에 “볼커룰”이라는 것이 있다.

글라스스티갈법 이후 80년만의 월가 개혁법이라는 볼커룰은 대형은행이 고수익을 내기 위해 과도한 리스크를 부담하여 자칫 금융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게 되는 위기상황을 예방하자는 취지이다. “세금으로 보호받으려면 전통적인 은행으로 돌아가라. 은행이 예금자보호와 구제금융까지 받으려면 헤지펀드처럼 위험투자를 해서는 안되고 자기계정 거래도 하지 말라”는 금융개혁의 외침이다.

볼커룰의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은행의 자기계정 거래 제한이다. 자기계정 거래는 단기 매매차익 실현을 위하여 자신의 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말하며, 흔히들 프롭트레이딩 또는 Proprietary Trading이라고 부른다. 현재로서는 60일이내의 거래활동을 제한하는 쪽으로 가닥 잡히고 있다.

자기계정 거래와 대비되는 개념이 대고객관련 거래나 헤지거래이다. 제3자의 요청에 의하여 대리인의 자격으로 실행하는 거래나 고객의 요청에 따라 은행이 거래상대방이 되는 경우, 고객기업의 유가증권 발행을 돕기 위한 투자 등이 대고객관련 거래이다. 대고객 거래에 따라 부담하게 되는 리스크를 완화할 목적으로 실행하는 거래가 헤지거래이다.

볼커룰이 다루는 또 한가지 중요한 내용은 은행의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소유 제한이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가 속성상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리스크를 부담하기 때문에, 혹여 라도 해당 펀드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소유자인 은행은 물론 금융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볼커룰은 지난 10월 시행규칙 초안이 발표되었고, 내년 1월까지 각계의 의견을 접수하여 내년 7월까지는 최종 시행규칙을 확정 공포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둘 수 있어 실제 적용은 이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볼커룰이 발효되면 은행 수익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가 볼커룰의 규제를 벗어나기 위해 은행지위를 포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외국은행에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는 입장이어서 미국 내에서 영업하는 각 외국은행이 긴장하며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글로벌 이슈로의 확대이다. 각국이 유사한 규제안을 도입하고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면 국내은행의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이니만큼, 글로벌 논의에 주목하면서 긴장감을 가지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국민의 61%가 볼커룰에 동의한다는 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지금처럼 경제상태가 불안한 시기에 불확실한 규제안이 시행되는 것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들린다. 각종 규정해석상의 모호성, 초안보다 완화된 최종안 확정 등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없어지고 본래의 취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회의적 전망도 있다.

볼커룰을 제안한 폴 볼커는 오랫동안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지금은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그야말로 미국 금융/경제정책분야의 최고수이다. 법안명칭에 담긴 그 이름이 글로벌 금융산업의 도도한 흐름 속에 어떻게 조명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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