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 원단(壬辰元旦)의 꿈
양종식/코오롱 미주법인장
청탁을 받고 달포가 지나매, 어느덧 원고 마감일이다. 무거운 마음에 이 생각 저 궁리로 구상을 마무리하느라 지척이다 잠에 빠져 들었다. 신묘년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몽중에 몸과 마음이 정결해짐을 느끼는 순간, 어디에선가 한번은 본 듯한 동산에서 50개의 무죽(?竹)중 태극(太極)을 제(除)한 49개의 산가지(算木)를 혹은 나누고 혹은 뽑아가며 초효(初爻)로부터 한 효 한 효 얻어가는 장면이 펼쳐졌다. 초구, 구이, 구삼 효로 내괘(內卦)를 이루고, 이어 육사, 육오, 상육 효로 드디어 외괘(外卦)가 완성되었다. 오호라 외괘는 곤삼절(坤三絶), 내괘는 건삼련(乾三連)이니 상곤 하건(上坤下乾)의 괘상(卦象)으로 이름 하여 지천태(地天泰)!
선명한 임진 원단의 꿈이었다. 정치인이나 문필가 등 저명인사들이 새해 이맘때쯤 인용하는 사자 성어나 휘호를 대하면 그만 입이 벌어져서 “참 비유도 좋고 말발도 세다”하고 감탄을 하곤 했다. 그런데 고전 공부를 하면서 지난 몇 해 귀동냥을 해보니 아뿔싸, 그 출전이 조금 과장해 말하면 죄다 역경(易經)이라!
무엇을 사유(思惟)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역경을 대하며, 혼돈한 이 세상 이 시대에 길을 밝히는 한 줄 등불이 있음을 깨닫고 내심 안도하며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든든하고 기쁘다. 주변 이웃이 다 등불 받들어 한 길 가는 도반임에랴!
그 사유의 바다에서 정수(精髓)를 꼽으라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지천태괘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땅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이상향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발로이겠으나, 주역 64괘중 최고의 대길괘(大吉卦)요 정월괘(正月卦)인 지천태괘가 오늘, 임진 원단에 꿈으로 내린 것은 실로 상서로운 조짐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은 위에 있어 높고 땅은 밑에 있어 낮은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지천태는 ‘로꾸꺼’다. 오히려 하늘이 밑에 있고 땅이 위에 있어야 천하가 태평하다는 거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늘이라는 것은 본래 상승하는 기운이 있고 땅은 하강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만약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으면 각기 ‘하나’(양)는 위로 가고 ‘둘’(음)은 아래로 가니, 하늘과 땅은 언제 만날 것인가? 서로 만나야 대화가 되고, 대화가 되어야 소통이 되며, 소통이 되어야 기쁨을 나누어 공유할 것 아닌가! 바로 그 이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참 이치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혹 남성이라면 오늘부터 여성을 대할 때는 상위로 모실 일이다. 그러면 열락(悅樂)을 동시 공감(同時共感)하며 그 관계가 성공에 이를 것이요, 부부 간이면 가정에 평화가 올 것이다. 혹 부모로서는 솔선수범으로 먼저 어려운 것을 행하면 자녀와 대화가 가능해져서 부모 자녀 간에 아름다운 자애가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이다. 또한 부하 동료 직원들에게는 겸손하게 귀를 열어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면 그 조직이 활성화되고 생산성은 배가될 것이다.
같은 이치로 나라님은 아래로 내려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백성은 어느 위치에서든지 사심 없이 임금을 받들어 공경하면 소통과 공감을 함께 나누게 되니 온 나라가 태평할 것 아니겠는가!
오늘 임진 원단에, 지천태 이 한 구로 세상을 대하는 경구(警句)로 삼고자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가만히 다짐해 본다. 2012년 1월 23일(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