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 로쿰”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장 이종건 (코참 자문위원)
서양의 라틴어 격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죽은 시인의 사회(1989)’라는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역할을 맡은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전한 명대사다. 그 원전은 에피쿠르스 학파의 호라티우스의 시 마지막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 디엠은 날(day)을 나타내며 카르포(carpo)의 명령형인 카르페(carpe)에는 ①잡다 ②즐기다 ③활용하다 등의 뜻이 있다고 한다. 카르페 디엠을 ①번 의미에 충실해서 번역하면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가 된다. 이는 주자의 권학문에서 ‘촌음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一寸光陰不可輕)’는 동양 고전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②번 의미에 무게를 두면 ’오늘을 즐겨라(Enjoy the day)‘가 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젊어서 노세‘처럼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해석의 근저에는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는 시간의 비가역성이 깔려있다. 두 가지 버전 모두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인 만큼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로 귀결된다.
카르페 디엠을 실천하기 위해 오늘을 보는 시각에 따라 두 가지 접근방식이 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반면에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현재지향적인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2005) 연설처럼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오늘 할 것이다. 얼핏 두 기본 접근자세가 상충되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하는 같은 메시지다. 결국 이 순간에 무엇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지는 각자의 인생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일의 우선순위와 관련하여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면 선택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사이에서는 갈등이 생긴다. 대부분의 경우 급한 일이 중요한 일에 우선시 되는 것이 다반사다.
급한 일들은 대체로 마감시한이 빠른 것부터 처리하게 되므로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매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에 비해 중요한 일들은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되므로 우선순위 결정이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카르페 디엠을 시간적 잣대에서만 살펴보았지만 이를 공간적 시각에서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날을 뜻하는 디엠에 장소(place)를 의미하는 로쿰(locum)을 대입하면 ’카르페 로쿰‘이 된다. ’이곳을 활용하라(Exploit the place)‘라는 카르페의 ③번 의미와 잘 어울린다.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언젠가 귀국해야 하는 우리 주재원에게는 세계 경제?사회?문화의 수도인 뉴욕이란 현장도 여기서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소중하다. 당신에게 ‘카르페 디엠’과 ‘카르페 로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오늘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