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주재하면서 미국인들에게 한글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자랑하는데, 이는 필자에게 은근히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전문 지식을 갖추고 하는 설명은 아니지만, 필자의 설명을 들은 미국인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글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첫 째, 작은 반도의 나라 한국이 독자 언어와 문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구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결코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인의 눈으로 볼 때는 그런가 보다. 또한, 미국은 이민자들의 정착으로 이루어진 합중국의 개념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둘 째, 한글은 세종대왕에 의해, 창조의 과정으로 탄생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다. 전 세계 어느 문자를 보더라도, 거의 자연 발생적으로 오랜 시일에 걸쳐 발달되었고, 각 시대 및 각 나라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변형의 과정을 거쳐 손질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글과 같이 그 유래, 창제 원리 및 그 뿌리가 명확한 문자는 없다.
셋 째, 한글은 모음과 자음을 합쳐서 총 24개 자모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인들의 눈에 보인 한글의 모습은 마치 중국의 한자 및 일본 문자와 엇비슷하기 때문에 영어처럼 알파벳 형식의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표음문자라는 설명을 신기하게 듣는다.
더구나, 영어의 알파벳이 26개인 것에 비해, 하늘을 상징하는 “·”, 땅을 상징하는 “ㅡ”, 그리고 사람을 상징하는 “ㅣ” 등 세 가지 기본 글자를 바탕으로 삼아 만든 모음과, 발음기관의 모습을 본 따 만든 ㄱ, ㄴ, ㅁ, ㅅ, ㅇ 다섯 개의 자음등 단순하면서도 과학적이고 동양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24개의 자모를 설명하면 놀라움을 표현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넷 째, 한국의 문맹률은 거의 제로다. 이는 미국의 문맹률이 국가 수준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은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놀라운 점이다. 물론 미국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지역이 많고, 이민자들로 인한 영향도 상당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문맹률은 높은 편이라고 한다.
다섯 째, 한글을 이용하여 전자문서를 작성할 때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낼 때, 그 속도가 영어로 작성하는 것과 대등하다. 언어학적 그리고 전산학적 관점에서 정량적인 분석은 필자의 전문분야가 아니므로 별도로 하고, 미국인들이 보는 시각에서 보면, 영자로 작성되는 속도와 한글로 작성되는 속도가 거의 동일하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문자로 작성되는 사례를 잘 아는 미국인들은 한글의 탁월한 표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한국어와 결합하여 한글을 배우는 것을 그리 쉽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칠판이 앞에 있을 경우 약 30분만 설명하면 간단한 단어는 발음이 가능했다. 이렇게 한글과 한국어를 호기심 수준에서 배우기를 시도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실제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었는데, 이는 한국어가 영어와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것과 달리 그다지 쉽다고 느끼지 않고,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에 비해 그 필요성이 덜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다음달 9일, 한글날이다. 정부가 다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릴 기회가 있을 때, 상기의 관점에서 한글도 언급하면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