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뉴욕으로 발령받아 오면서 비행기에 있는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선은 한번도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미국에서, 그것도 처음으로 지점을 열어 금융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고, 가족들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니 그것 역시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게다가 서울을 떠나올 때 ‘만주에 독립운동 하러 가던 투사들을 생각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라’는 본점 상사의 메시지가 귓가에 맴돌던 터라 사방이 온통 잿빛 투성이로만 보였다.
하지만 주위에 계신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직원들의 노력 덕택에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농협은행 역사상 첫 해외지점 업무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지면을 빌어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점 업무를 시작하면서 마케팅, 고객 서비스, 내부관리 등에 못지 않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업이나 금융업은 그 배후에 자본을 투자한 주주가 있고, 각 조직과 임직원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자본주의(Capitalism)의 경영 제 1 철학이었다. 그러나 주주 이익만 강조한 일부 기업, 금융사의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위기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정부, 비정부 기구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는 모델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도출된 것이 바로 협동조합 기구이다.
협동조합의 주요 운영원칙은 사회적 경제적인 약자를 중심으로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가입 제도 아래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인 운영, 지분에 따라 의결권을 가지는 주식회사와는 달리 조합원 모두가 1인 1표의 동등한 권리를 행사, 또 가장 큰 특징으로 조합원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지역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이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른 협동조합 설립은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활성화 되어 왔고, 자본주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최근 한국에서도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면서부터는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이 활발히 설립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한 농협에 대해 잠시 소개를 하고 넘어가고 싶다. 1961년 설립 이래 지속적이고 꾸준히 협동조합의 모범 사례로 발전한 농협은 주인인 농업인 조합원에게는 농산물 제값 받기를 통한 소득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며, 거래 국민에게는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 제공에 주력해 왔다.
한편, 100% 순수 민족자본 협동조합은행인 농협은행은 국내은행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과 함께 전국 정부, 지자체 금고의 95% 이상을 유치한 나라살림 전문은행으로서 지역조합을 포함해 5,600여 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금융거래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뉴욕에 금융지점을 개설하면서 농협이 기치로 내걸고 있는 ‘같이의 가치(Value of Togetherness)’를 다시 생각해 본다. 농협은행은 국내 은행 중 최대 사회공헌 금액을 지원과 함께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협동조합 중요 원칙의 하나인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은 일회성 금전적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건전한 파트너로서 발전을 위해 함께 해 나간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초한지에 세력과 끗발도 없던 유방이 ‘역발산기개세’로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한 데는 장량이라는 걸출한 책사와 한신이라는 뛰어난 대장군이 있기도 했지만, 뒤에서 조용히 한번도 병사들의 배를 곯리지 않고 지원해 준 소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라고 하지만 기업과 은행들도 각자의 역량 하에서 사회적 책임을 뒤에서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다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