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퇴임하는 친구 K에게 KOCHAM January 7, 2016

[뉴욕중앙일보] 퇴임하는 친구 K에게

윤국장님칼럼한바탕 의미 있는 삶이었네.

나야 먼저 조직을 떠났지만 정년이 따로 없는 요즘 세상에 오십 중반이면 정년퇴임으로 기념할 만하네. 오히려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기에는 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요즘 들어 시달렸을 것 같더군.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80년대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맑았어. 좌든 우든 생각의 노선을 정하기가 쉬운 시대였지. 책 몇 권 읽지 않고도 시대를 간파할 수 있었던 세대였어.

당시 숨쉬던 공기와 생활하던 환경과 외침에 그 모든 경험과 지식과 사상이 녹아 있었으니까.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편할 날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

90년대의 다양성에 2000년대의 속도에 그리고 이후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숨차게 쫓겨 다니기만 했으니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과소평가하는 게 습성이 되어있을 듯 하다. 적당한 강박관념과 자기암시로 그나마 개인발전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이 짐작 가능해.

그래서 우리 전후 10년의 세대가 바로 ‘국제시장 세대’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이론으로 무장하여 무역대국의 최일선에서 줄곧 매진해왔던 세대로 평가 받지 않나 해.

우리의 전 세대가 집안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장남과 같은 존재였다면 우리는 그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장남의 부재를 감내하며 나름의 선택권과 의견을 주장했지. 오렌지족이란 말을 들었던 외국 유학물을 먹었던 편과의 편가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자식들과 대화는 균형감을 잃은 지 꽤나 되었을 거고 그래서도 더 일이 편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1막을 정년까지 마무리했으니 감히 영예로운 삶이라고 할 만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 사고 그리고 명예와 정직을 목숨처럼 지녔으니 지금과 같은 영예로운 퇴임이 가능했을 거라고 쉬이 짐작한다.

몇 번 조직의 장을 경험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으니 말이야.

이제 우산 속에서 나와야 할 시간이야.

세찬 비를 맞기도 하고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를 경험할 것이고 지나친 보호막 벗기는 무더위도 겪을 거야. 이 순간을 막연히 기대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가 뻔한 인사발표 하루 전에도 본인은 생존과 승진을 기대하는 것이 월급쟁이의 생리이고 그런 습관적인 착시만큼이나 뻔한 결과는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듯 삶이 그렇게 쉽진 않아.

삶의 전환점을 지날 때마다 생겼던 쉽지 않았던 고민과 인내의 사리는 보약이었을 수도 트라우마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게 앞으로도 남은 삶에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근거와 힘이 될 거야.

자식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끼듯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 일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을 거다.

하지만 일관성 있게 유지했던 생활은 또 다른 일관성 있는 삶을 주도할 것이니 의미 있는 삶일 가능성이 많다. 수직 수평적 사고를 두루 겪은 경험과 능력은 어느 삶에 대입해도 뒤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조직에 있을 때 제안했던 진보적인 제안들과 발상들도 실험 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생의 2막을 여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궁금한 내가 아니면 안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 기간 연장 가능한 가치들이며 어려움들을 극복할 자산임을 명심해라.

K 한가지 더 당부할 말이 있어.

가끔은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고생이 많았다고 수고했다고 격려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직원 동료들에게 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가족과 마주보고 앉지 말고 같은 방향으로 같은 곳을 보고 앉기 바란다.

언제나 가족 사진에서 빠지지도 말고 그 중심에 앉아야 해.

아직도 늦지 않았고 너는 그런 대접을 받아 충분히 마땅하다.

K 그 동안 고생 많았다.

 

1.7코참칼럼

<2016년 1월 7일 중앙경제 2면>

기사 링크: https://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94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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