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퀸 백미와 가와지 5분도를 사용하겠습니다.”
세계적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앞으로 사용할 쌀 품종과 분도수를 정했다며 연락을 주었다. 골든퀸은 뭐고 가와지가 뭐지? 5분도는 또 뭔가?
늘상 밥을 드시는 독자들 중에서도 고개를 갸우뚱 할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쌀은 크게 단립종 (short grain), 중립종 (mid grain), 장립종 (long grain)으로 나뉜다. 골든퀸과 가와지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300여 가지 단립종 중에서 고른 품종 두 가지를 지칭하고, 5분도는 현미 겉부분 (미강, bran)을 50% 깎아달라는 분도수 (milling rate)를 의미한다. 미강을 모두 제거하면 우리가 아는 백미가 된다. 미강을 없애는 과정을 ‘정미’라고 부르는데 정미 후에는 산패현상이 시작되어 맛, 향, 수분, 식감이 점점 떨어진다. 오래된 백미는 그래서 맛이 없다. 산패의 진행을 더디게 하기 위해선 냉장보관이 필요한데 일반 가정에서 그리 하기는 어렵다. 쌀은 통상 큰 포장단위로만 판매되기 때문이다.
우리말이 써있기 때문에 한국산이라 여기고 시중에서 구입하는 쌀은 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부분 미국산이고 그마저도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선호하는 단립종이 아니라 중립종이다. 정미 날짜도 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나 오래된 쌀인지 알 수 없다. 판매자가 냉장 보관을 하지도 않았을테다. 당연히 갓 정미한 단일품종 쌀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크다. 미식이 발달한 일본 내에서는 소포장한 정미쌀 소비가 상당하다.
쌀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하는 이유는 한식을 대하는 한인과 타인종의 인식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씨마켓(www.kimcmarket.com)이라는 이커머스 회사를 경영한다. 내추럴, 유기농, 건강한 한국산 식품을 직접 수입하고 생산자의 철학, 생산의 이유 등을 설명해 전국의 개인고객에게 판매한다. 특이하게 고객의 60% 이상은 미국 현지인이다. 레스토랑으로의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750개 품목 중 베스트셀러는 고객이 원하는 품종, 무게, 분도수에 맞춰 정미하고 전국으로 배송하는 바로 그 한국산 쌀이다.
미국인 고객들과 외국 셰프들은 왜 익숙치도 않을 우리 쌀을 정미까지 해가며 구입할까? 그들은 콘텐츠가 있는 ‘건강한 한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맛은 둘째 치고, ‘주문 후 정미한 신선한 쌀’은 희귀한데다 쌀 관련 정보를 전달하면 손님들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금융가 출신 인재들이 오픈하는 패스트푸드식 한식당에서 조차 한국산 정미쌀을 원한다.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여 고객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대중 한식당 사장님들 몇 분을 만났다. 위의 트렌드를 전하면 “좋은 재료를 써도 어차피 우리 같은 밥집의 손님들은 차이를 몰라요”라며 스스로에게 제한을 둔다.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데 뭐하러 비싼 쌀로 바꾸나요?”라는 분도 있었다. 판매 가격이 더 낮은, 테이크아웃용 주먹밥만 판매하는 일본가게에서도 갓 정미한 일본 쌀로만 밥을 짓고 농부 사진도 보여주며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준다고 말씀드리면 한식은 아직 멀었다며 귀를 닫는다.
한식의 고급화는 매우 필요하다. 일식(和食/日本食)의 경우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내 아시안 레스토랑 총매출 순위에서 일식은 320억 달러로 단연 1위다. 한식보다 5배나 큰 규모다. 인식의 게임에서 고급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보니 흔히 말하는 대중적인 식당으로까지 공간이 넓고 식재료, 그릇, 설비, 심지어 수리 서비스까지 관련 시장 규모도 상당하다. 모든 것에 일본 프리미엄이 붙는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한식당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이중 70%가 타인종 소유이다. 5년새 그 비중이 90%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각은 주관적이라지만 음식 맛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런 현상이 미국에서도 나타난다. 제대로 된 한식을 미국 사회에 안착시키고 한국 문화의 인기를 이어가려면 음식 재료와 맛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설명하며 방벽을 세워야 한다.
세상은 변하여 뉴욕에서 ‘메주 (Meju)’라는 우리 이름을 달고 전통 발효음식을 고집해 미슐랭스타를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의 키친에서는 우리의 전통 고추장과 된장, 간장이 귀하게 사용될 정도로 한식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부심을 갖고 한식의 고급화에 신경 써서 시장 전체의 확장과 미주동포들의 사업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일반 소비자들도 식품의 레이블을 읽어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가정의 건강을 지키고 한식의 차별화된 고급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