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득수 우리은행 뉴욕 본부장, 코참 운영위원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에 대한 화제가 있었다. 선진국이 아니면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는 이미 선진국가라고도 하고 일부는 선진국에는 아직 이르고 중진국의 상위에 속한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의견도 있었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중반만해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개발도상국이라는 용어를 즐겨사용하였던 기억이 있으니 개발도상국으로 진입한 지 약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는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그리고 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의 국가를 분류하는 기준은 수없이 많겠지만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GDP, 국민소득, 무역규모 등 경제적 기준으로 나누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경제적 기준으로는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이견이 있는 독자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우선 GDP의 경우, 2008년 기준으로 세계 15위인 U$ 9,291억 (1975년 U$216억)으로 유럽의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등 보다도 앞서 있다. 1인당 국민소득(GNI) 역시 2008년도 U$21,530로 1975년 U$607에서 35배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으며, 수출입규모도 각각 U$422,007백만, U$417,352백만으로 물량기준으로 세계10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금년도에는 사상최초로 수출입규모 1조달러를 상회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러한 가시적인 경제지표 외에도 G20의장국 역할 수행이나 UN사무총장 배출국, 동.하계 올림픽 개최국내지 개최예정국이라는 경제외적인 면까지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가끔 언론이나 통계 등에서 “선진국의 예를보면” 또는 “구미의 선진국과 비교해보면”과 같은 인용문구를 종종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나 통계를 별로 이질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스스로가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할까?
그것은 경제외적인 삶의 질도 선진국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은행업종과 비교해보면 쉬울 듯 하다. 은행의 경우 각종 금융관련 잡지에서 매년 세계 1,000대 은행을 발표하는데 최근에는 자산이나 자본력 기준으로 중국계은행이 World Top 10의 상위를 상당수 차지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럼에도 중국계은행을 쉽사리 “선진은행”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세계 Top 수준의 대형은행임에도 선진은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것은 자산이나 수익측면에서 상위권이지만 Software가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다른 은행의 Role-model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선진은행이라함은 국내외 시장을 선도하는 리딩파워, 창의적인 상품의 지속적 개발, 경영혁신노력, 세계경제에 대한 공헌 및 책임,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정보력 등 비계수적인 면까지 모두를 포함한 즉 금융문화를 선도하는 은행을 선진은행이라고 부르는 이치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이를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국민소득, 수출입규모 등 경제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비경제적인 면, 정신문화적인 면까지도 선진국의 역량을 갖춰야 자타가 공히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인정할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인격과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것이 제일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지난 3월 일본 동북부의 지진과 쓰나미사태 당시 일본인들의 질서와 침착함이 세계인의 찬탄을 자아낸 바 있다. TV나 인터넷으로 일본인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타이타닉 침몰시 끝까지 남아서 연주하던 밴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을 찡하게 하는 그 무엇이 바로 감동을 주고 일본사람들의 인격과 국격을 지키는데 일조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자기희생의 감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에티켓 준수, 지역사회에의 공헌, 우리문화에 대한 자존심 그리고 현지문화에 어긋나지 않는 언행 등 스스로 인격을 연마하는 자발적인 노력과 함께 국가적으로도 경제적 선진국 위상에 걸맞는 국제사회에의 공헌, 우리문화의 계승발전, 교육을 통한 시민의식의 고양 등 국격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와 유산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로 우리나라만큼 유구하고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도 그다지 많지 않다. 20세기 중후반 경제개발 우선주의에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소홀히 취급되면서 우리국민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개인의 인격이나 나라의 국격을 잊어버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이미 선진국민으로 여기고 우리문화의 Software를 지키고 가꾸며 선진국민에 걸맞게 행동하면 지금이 바로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본다.